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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자연경관  특색있고 매력있는 생태보존, 문화도시의 사하로 놀러오세요.

다대포 객사

객사란 조선시대 지방 관아(官衙:관청) 건물의 하나로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궁궐)을 향해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으로 근엄하게 지어져 사신(使臣)이 있을때는 그 사신의 숙소가 된 곳이다.

조선시대에 부산에는 다대포첨사영 이외에도 부산진성 안에 공진관이란 이름의 객사와 지금의 수영인 옛 좌수영에 영파당(寧派堂)이란 이름의 객사가 있었고, 동래부에 봉래관(蓬萊館)이라 이름한 39간(間)이나 되는 객사가 있었다.

그리고 초량왜관에 왜관으로 오가는 사람을 위해 대동관이란 객사에 조선왕조 건국 이래의 역대 국왕의 전패(殿牌)를 봉안하고 있었다.

그때는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이 전패에 먼저 예를 올려야 했다. 위에 말한 객사들은 지금으로부터 90년 이전(한일합방 이전) 또는 갑오경장 이전까지는 부산에 모두 다 있었으나 지금은 다대포진 객사만 남아 있다.

다대포진 객사가 남아 있다 해도 지붕과 기둥과 밑뿌리의 하방(下防)만 남아 있을뿐 벽체는 허물어진 뒤다. 그때 회원관이라 불린 이 객사도 본디의 다대포진이었던 지금의 다대초등학교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1970년 몰운대 현재의 자리에 원형그대로 이전 복원된 것이다.

한데 다대포를 비롯한 남해안은 예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던 곳이다. 그 왜구를 막기 위해 수군의 절도사영을 두었는데 조선조 초기의 다대포영은 부산포절제사영 휘하의 만호영(萬戶營)이었다. 그때는 장림포(長林浦)에 있었다. 그 뒤 다대포로 옮겨지고 명종이후 다대포 만호영은 부산포와 같은 진(鎭)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이후는 부산포진과 함께 그 중요성에 비추어 딴 진보다 2배의 병선을 가지게 되면서 다대포진의 첨사는 북경(北境)의 만포진첨사(滿浦鎭僉使)와 같이 정 3품 당상관이 임명되었다.

이 다대포진 객사의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1970년 몰운대로 옮겨지고는 산꼭대기에 벽체가 없이 서서 누대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문화재 현황

문화재의 현황,시대 정보
문화재명현 황시 대
다대포객사
  • 다대동 산144번지(몰운대) 위치
  • 부산광역시지정유형문화재 제3호(1972.6.26.)
  • 지방 관아 건물의 하나로 수령이 대궐을 향해 망배 드리던 곳
  • 창건년대 미상 (1825년 중수)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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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문화관광과 이미경 (051-220-4082)
최근업데이트
2019-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