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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동 지석묘

감천동 562번지 일대에 모두 6기의 지석묘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발전소 건설 및 도로공사 등으로 소멸되었다. 청동기시대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고, 부족사회의 어떤 권력자가 이곳에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고인돌이라고 불리는 지석묘는 일종의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로서 매장지 인 것이며, 세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그 축조형식에 따라 탁자형인 북방식 지석묘와 바둑판 모양인 남방식 지석묘, 그리고 지석이 없는 변형적 지석묘로 구분된다.

남방식 지석묘는 기반식이라고도 하는데 석관을 매장하고 그위에 5∼6개의 괴상석 또는 작은 판석으로써 부정형의 괴석, 혹은 판석으로 된 개석을 괴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괴어 놓은 측석으로 묘실을 만든 것도 있다. 남방식의 특징은 어떤 것이든지 묘실이 지하에 묻혀있는 점이다.

1966년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바 있으며, 일제시대 때 채집된 유물들은 현재 동아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감천동에는 병형적 지석묘와 남방식 지석묘가 공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청동기시대인의 생활이 그만큼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유적주변에서 돌절구, 돌도끼, 돌대패날, 돌끌, 땅을 파는데 사용하는 흠이 팬 돌도끼 등의 마제석기와 무문토기편과 함께 나오는 쇠뿔모양의 우각형 손잡이가 출토되었는데 이런 유물은 우리나라에서 농경생활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대티고개밑에서 나온 석관묘로 보이는 유적에서는 무문토기에 단(丹 : 붉은)을 칠하고, 광택을 낸 단도마연토기 한점과 마제석검 한점, 마석촉 세점, 미완성 석촉 두점이 출토되어 무문토기와 함께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무문토기에 단을 칠한 완형토기가 우리나라에서 출토되는 예는 별로 없었으며, 이 토기는 이른바 일본의 야요이식 토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서 선사인과 섬나라 일본과 연관성을 생각한다면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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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문화관광과 김소연 (051-220-4084)
최근업데이트
201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