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강과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자연경관  특색있고 매력있는 생태보존, 문화도시의 사하로 놀러오세요.

괴정동 고분

구덕산의 남쪽에 있는 완경사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여 오성고등공민학교를 지을 때 발견된 고분으로 지금은 화신아파트가 들어서 주택으로 바뀌었다. 이 지역일대는 옛날부터 알려진 대규모 고분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택지로 바뀌었다. 이 고분은 1975년 경성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하여 20×40미터 범위의 발굴지역내에서 3∼4미터 간격으로 39기의 무덤을 발견했다.

무덤은 돌덧널무덤(석관묘) 29기와 독무덤(옹관묘) 10기의 두 종류였다. 돌덧널무덤은 깬 돌과 판석으로 네 벽을 쌓고 뚜껑을 덮었다. 돌을 쌓은 상태는 조잡하고 돌덧널은 길이에 비해 폭이 아주 좁았다. 뚜껑은 돌로 된 것과 나무로 된 것이 있었다. 무덤 바닥에는 자갈을 깐 1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생토바닥이었다. 피장자 배치는 동서향으로 머리는 동쪽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1966년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바 있으며, 일제시대 때 채집된 유물들은 현재 동아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독무덤은 전부 깬 돌을 쌓아 만든 돌덧널속에 설치하여 돌뚜껑을 덮은 것으로 보아 어린애의 무덤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예가 드문 묘제(墓制)였다.

출토유물은 토기가 270점, 철기가 300점, 장신구가 30여점이었다. 토기는 대부분 신라계 토기였으며 이 지역의 재래요소는 극히 적었다.

철기는 고리손잡이 큰칼, 재갈, 낫, 창, 살촉들이었으며 장신구는 금제 또는 금동제 귀걸이와 곡옥(曲玉) 유리구슬들이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곽 안 또는 곽 밖으로 묻혀져 있다.

이 고분은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고분 형성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것으로 생각되며 그 연대는 오륜대고분이나 복천동고분이 가진 일부의 시기 가운데도 늦은 쪽인 기원후 5세기 후반대로 보였다. 특이한 구조를 가진 돌덧널무덤과 곽외부장(槨外剖葬)은 이 지역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었다.

문화유산 현황

문화재명, 현황, 시대에 관련된 표입니다.
문화재명 현 황 시 대
괴정동 고분군
  • 괴정동 1026-32번지 일원 위치
  • 1975년 6월 발굴, 아파트입주로 소멸
  • 수혈식 장방형 석관모 29기, 옹관묘 10기
신라시대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담당자
문화관광과 김소연 (051-220-4084)
최근업데이트
201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