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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자연경관  특색있고 매력있는 생태보존, 문화도시의 사하로 놀러오세요.

당리동  위치가 표시된 사하구 지도

당리동(堂里洞)은 동쪽으로 괴정동, 서쪽으로 하단동과 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태백산맥의 줄기가 내려오다가 승학산(乘鶴山)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동쪽에 산불량(山不良), 남쪽은 호복구(虎伏口 : 獨山)를 바라보고 맑은 계류(溪流)를 따라 좁은 골에 마을을 이루어 사는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다.

승학산은 해발 496m로써 고려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두루 다니며 산세를 살피다가 이곳에 이르러 산을 보니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鶴)이 웅비(雄飛)하는 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산불량은 태백산맥의 줄기가 이곳까지 뻗어와 아깝게도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못 쓸 산이라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고려시대부터 발달된 지리 도참설(圖讖說)에서 유래되어 구전(口傳)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마을의 한 가운데를 연중 맑은 물이 흐르는 제석골거렁(堂里川) 사이로 초가집이 옹기종기 서고, 밥 짓는 연기가 산골짜기를 따라 하늘로 흘러가는 시적(詩的)인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괴정동에서 옮겨 온 사하구청이 들어서자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사하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리(堂里)라는 동네 이름은 제석곡(帝釋谷)이라고 부르는 승학산과 산불량의 사이에 있는 계곡에 제석단(帝釋壇)을 쌓고 기우제(祈雨祭)를 드린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일설에는 제석곡에 사당을 짓고 여신(女神)을 모신데서 온 것이라는 속설(俗說)도 전한다. 제석(帝釋)이란 불교용어로 제석곡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 상당히 많으며, 이런 곳에는 대개 기우제단(祈雨祭壇)이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아치섬을 제석곶(祭釋串)이라고 하며, 여기에도 역시 기우소(祈雨所)가 있었다. 거리에 떠돌아다니는 잡귀(雜鬼)를 막고 부락을 수호하는 거릿대가 있는 성역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큰 소나무나 포구나무 중 하나를 택하여 신목(神木)으로 하는 것과 또 하나는 돌들을 쌓아 탑을 만드는 것인데, 목신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당리동은 석탑을 만들어 당제(堂祭)를 지냈다.

도시가 확장되고 발전되면서 주택과 공장이 여기저기에 들어서고 부터는 이 골짜기의 아름다운 암석(岩石)은 채석(採石)되어 토목공사에 사용되어 볼품없이 되었다.

당리천 하류부 대부분이 복개되면서 주변이 아파트단지와 주택지로 바뀌어 산수청명(山水淸明)한 전설적인 고장의 맛을 잃기는 했으나, 공기가 맑고 조용해 주택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당리동은 본래 동해군 사하면의 지역으로서 신당이 있었으므로 당곡 또는 당리라 하였는데, 조선 고종 33년(1896)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당리동이라 해서 다시 동래군 사하면에 편입되었는데, 1942년 부산부 구역확장에 의하여 다시 부산부(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구제실시에 따라 사하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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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문화관광과 서태영 (051-220-4082)
최근업데이트
2019-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