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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시 사하, 절경을 품은 철새의 고장 새로운 비전을 품은 도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대포 후리소리 소개

다대포 후리소리 사진

다대포 후리소리는 1987년 7월 1일 지방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멸치잡이할 때 그물의 멸치를 후리며 노동의 피로를 덜고 흥을 돋구는 어로요(漁撈搖)다.

다대포는 수군의 다대포진이 설치돼 있어서 수군조직을 모방하여 조직력과 규율 및 협동력이 강했다.

이 지역의 어로철은 음력 3월초순부터 시작하여 4월말까지 젓갈용인 봄멸치를 잡았고, 5∼6월은 작은 멸치가 잡혔다. 추석을 전후하여 11월까지는 가을 멸치가 잡히는 철이었다.

다대포는 낙동강 하구가 되어 멸치의 먹이인 부유생물(浮游生物)이 많았고 멸치 또한 어느 바다의 멸치보다 살쪄서 맛이 좋았다. 이 멸치는 떼를 지어 다녀서 큰 그물을 쓰는 집단 어로가 유리했고 그물을 끌어올리는데도 마을의 온 사람이 달려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다대포에서는 어로철이 되면 경험이 많아 물때에 따른 고기떼를 잘 알아낼 줄 아는 전문가들이 해질 무렵 야망대(夜望臺)에 올라 멸치가 몰려드는 기미를 잡아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멸치떼를 몰고 징을 치면 동네사람은 그물을 가지고 바다로 나갔다.

이 다대포 후리소리는 그 공동작업의 과정을 따라 형성되었는데 후리소리란 후리그물이라는 큰 그물로 넓게 둘러치고 여러사람이 벼리의 두 끝을 끌어당기면서 부르는 소리(노래)다. 그 후리그물은 바다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 육지로 끌어올리는 지예망(地曳網)이었다.

이 후리소리는 풍어를 비는 당산제(堂山祭)부터 시작되어 풍어를 노래하는 끝소리까지 8과장으로 되어 있다. 이 후리소리가 자취를 감춘 것은 1950년 후반에 바다의 치어(稚漁)까지 잡는다하여 지예망어업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 있어서 후리소리의 채록(採錄)은 비교적 쉬웠다. 이곳 노인들이 1981년부터 노인당에 모여 그날을 되살리며 가사와 가락을 채록한 것이다.

그렇게 채록 발굴한 것을 1986년 부산민속경연 대회에 출연하여 장려상, 1987년 부산대회에서 우수상, 전국민속경영대회에서 장려상에 입상함으로서 재연(再演)을 보게 되었다.

이 다대포 후리소리가 1987년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기까지는 나이 많은 다대포 거주의 남녀 70여명과 동아대학교 강용권 교수의 학술적 고증에 힘입는 바 컸다. 현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이는 배동식, 엄공열, 백종근, 채태화 등 네 사람이다.

이 다대포 후리소리는 어로작업에 직접 종사했던 사람들에 의해 가사와 곡조와 동작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전승되어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 그 소리는 대부분 4박자로 돼 있어 이 지방 민요의 특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민속적인 면으로나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면으로도 옛것을 되살피는 가치가 있는 후리소리다.

관련정보

다대포후리소리에 대한 설명 표입니다
문화재명 현황 종류
다대포후리소리 멸치잡이 후리질을 하면서 어민들 사이 불리어진 어로요
부산시 지방무형문화재 제7호(87. 7. 1)
무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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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업데이트
2019-07-01